중국의 식음문화(食飮文化)와 실내공간(室內空間)

 

 

January 27, 2015

 

 

 

[중국의 식음문화(食飮文化)와 실내공간(室內空間)]

 

한 나라의 식음공간을 보면 그 나라가 가진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볼 수 있게 된다.

 

중국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객실을 보면, 중앙에 회전하는 원형 판을 포함한 원탁(圓卓)과 의자가 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원탁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서양식의 사고로 원탁은 일반적인 평등, 동등한 발언권, 다수결 등을 상징할 때가 많다. 하지만 중국의 원탁과 의자의 배치, 방의 계획에는 엄격한 위계와 계층적 사고가 포함되어 있다. 직원의 동선(動線)과 음식이 들어오는 경로, 늦게 오거나 먼저 가는 객(客)을 다루기에 좋은 자리, 풍수의 현대적 해석을 포함한 과학적, 분석적 배치도 포함한다.

 

원형의 탁자는 한 번에 둘러앉을 수 있는 인원수에 따라 테이블의 직경이 정해진다. 물론 좁게 앉느냐 넓게 앉느냐에 따라 약간의 유동적인 변화는 있다. 객방의 크기는 하나의 원형 테이블이 들어갈 수 있도록 정해지게 된다. 고급 음식점일수록 원탁이 있는 주 공간 이외에 부수적인 공간이 수반되어 들어간다. 소형의 화장실, 세면대, 옷이나 소지품을 정리할 수 있는 옷장, 따로 쉬거나 흡연을 할 수 있는 소파 등이 있다. 6명 정도가 들어가는 작은 방에서부터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원탁도 있다. 원탁이 크면 중앙에 있는 돌아가는 판도 자연스레 커지니 손으로 돌리기에는 부담스러워 지고, 거기에 요리까지 올라가면 손으로 돌리기에는 어림없는 무게가 된다. 따라서 기계가 원형 판을 자동으로 돌린다. 원판을 손으로 돌리면 반대로 돌릴 수도 있고, 잡아서 세우거나 더 빨리 돌아가게 할 수도 있다. 손을 떼면 다시 제 속도로 돌아간다. 원탁이 너무 빨리 돌게 되면 공유된 음식(공용접시나 국그릇)을 자기 앞 접시로 떠 옮기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느리게, 하지만 한 바퀴 돌고나면 음식이 다 떨어지지는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원탁은 돌아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요리가 나오면 음식이 사람에게 돌아가는 순서도 위계를 따르는 편이다. 복무원(服務員. 도우미)이 가지고 온 음식을 문 가까이의 원탁 부분에 놓고 빠른 속도로 회전판을 돌려 가장 주된 인물 앞에 음식을 대령한다. 호스트(host)는 재빨리 오른쪽 즉, 자신이 대접하고자 하는 손님에게 넘기며 먼저 떠 담기를 권한다. 이는 상대에 대한 양보와 배려이며 그 순서는 본래 엄격하다. 공식적이고 대표성을 띤 모임일수록 순서는 위계를 따른다. 심지어 발언의 순서와 술을 권하는 순서, 자리의 위치까지 정해져 있는 편이다.

 

가령 A그룹에서 B그룹을 초대하여 대접하는 자리가 있다고 가정하자. 객실의 문을 기준으로 가장 먼 쪽이 통상적으로는 귀빈석이며 이곳의 벽면이나 병풍 등에는 용이나 특이한 문양이 있다. 이 화려한 배경 바로 앞에는 등받이가 조금 더 높거나 큰 의자가 놓여 있고, 테이블에는 다른 것과는 차별되어 보이는 더 높은 형태로 접어놓은 테이블 수건이 놓여있다. 이곳이 최상석(最上席)을 뜻하며 A그룹의 수장(首長)이 위치한다. 수장은 객들이 도착하면 그 객들이 앉을 위치를 하나하나 지정하여 준다. 가끔은 호스트가 늦게 도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면 다들 어디에 앉을지 몰라 옆의 소파에서 서성대거나, 서서 호스트를 기다리는 광경이 연출된다. 물론 모든 음식과 술 계산은 물론 주문 또한 이 자리의 사람이 결정한다. 최상석의 오른쪽과 왼쪽은 B그룹에서 서열이 높은 두 명이 앉게 되며, 통상적으로는 오른쪽에 가장 중요한 손님을 모시게 된다. 이는 손님을 옆에 가까이 두고 테이블 위에서 돌고 있는 음식을 직접 떠 주고 챙기려 함이다. 최상석의 맞은편은 A그룹의 2인자가 자리하게 되며, 그 오른쪽과 왼쪽에도 B그룹에서 중요한 손님이 위치하게 된다. 그 외 나머지 자리는 음식 등을 챙겨 주기 위해 혹은 대화를 위해 A-B-A-B식으로 섞어 앉는 경우가 많다. 발언권의 순서도 위와 동일하게 진행된다. 술자리의 발언 횟수는 수장이 그 날의 분위기와 목적에 맞게 정한다. 예를 들어 A그룹의 수장이 3회 발언을 -덕담, 권주, 구호, 성어(成語), 조직이나 특정인에 대한 감사인사 등 매우 자유롭고 다양하다- 하면 부장이 2회, 나머지 A그룹의 모든 일원이 1회씩 발언을 하며 술을 권한다. A그룹의 모든 일원이 좋은 말들을 하고 나면 B그룹의 일원들이 발언을 한다. 물론 일어나서 하는 공식적인 발언들 사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듣고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수준에서 앉아서 말도 하고 옆 사람과 수군대기도 하고 즐겁게 대화를 한다.

 

좋은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 대신에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라’ 라는 것, 이것은 중국인들의 합리주의적인 사고와 공짜가 없다는 식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B그룹의 모든 일원들은 A그룹의 극진한 대접과 음식을 떠 주는 배려에 지루한 줄 모르고 긴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다. A그룹의 모든 일원이 덕담을 마친 후 술을 권하고 나면, B그룹이 건배제의나 덕담 등을 한다. 참고로 덕담을 할 때에는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고 공손히 말한다. 건배를 할 때에는 대형 원탁에서 직접 잔을 부딪칠 수가 없으므로 모두 함께 잔의 아래 부분을 원탁에 탁탁 치는데 원판은 대부분의 경우 두꺼운 유리재질이라 소리가 아주 경쾌하다. 건배는 말 그대로 잔이 마르게 마셔야 하는 것이니 다 비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다수의 한족을 포함하여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지역별 사투리 때문에 같은 나라 사람들 끼리 대화가 안 되는 지역도 있는 중국을 말하면서, 성급한 일반화를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 5년간을 중국에서 지낸 나의 경우는 이런 경우가 많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계층일수록, 또한 공식적인 회식자리일수록 이러한 성격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앞에서 묘사한 이러한 분위기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강압적이고 획일적 풍경으로 읽혀질 수 있지만, 사실 중국인들은 매우 자유롭고 상하관계 또한 자연스럽다. 한국어처럼 복잡한 존칭이 존재하지 않아 너나 나나 모두 친구 개념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다. 식사를 같이하며 술 한 잔 기울인 후에는 조직과 직급이 달라도 모두 다 펑요우(朋友,친구)라는 인간적인 호칭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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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중국 학생들과의 식사. 2014.05. 중국. 산동성. 칭다오. 음식점에서.

 

 

한식 문화도 알고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까다로운 법도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통용되는 절차나 법도는 그리 많지 않게 느껴진다. 회사에서나 어려운 자리에서도 그저 자신보다 연장자가 보이는 행동에 반응하여 눈치껏 처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룹의 수장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 따라 재빠르게 처신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상황파악이 힘든 신입의 입장에서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즉 시작할 때 그룹의 수장이 오늘의 진행방식을 선포하고, 이 순서대로 행동하면 되는 중국인들의 회식문화와 절차가 편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음주가 중심이 되고 폭음을 강요하는 조직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최근 한국의 분위기는 술을 억지로 권하지 않으며, 술이 목적이 되지 않게 하려는 움직임이 많다. 이런 흐름을 타고 한국에서도 이러한 공간과 테이블을 이용해서 새로운 식음문화를 만들어 봄이 어떨까 한다. 상하의 위계와 절차는 존재하지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개성이 분명하고 자유로운 개개인에게 발언권이 보장되는 그러한 회식문화, 한국인만의 절도 있고 정감 있는 식음문화를 상상해 본다.

 

졸업 작품을 위해 밤을 새우며,

찾아와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한국 디자인계의 미래를 기대해 보며,

2014년 10월의 어느 늦은 밤 연구실에서...

 

수원과학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과 조교수. 황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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