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미에게.
약 10년 전 중국에서 배가 고파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어설픈 중국어로 주문하기가 두려워, 아빠는 초등학생 동생과 언니에게 카드를 주며 주문을 부탁했다. 자매는 서로 잠시 눈치를 살피다 동생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주문받는 점원에게 자신 있게 걸어가서 중국 말을 시작한다. “음…. 햄버거 3개 주세요”, 점원은 빛의 속도와 극강의 얼화(북경지방 특유의 혀를 말고 발음하여 모든 말이 비슷하게 들린다)로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쏘아댄다. 당시 주변의 모든 중국인이 보자마자 예쁘다고 쓰다듬고, 안고, 뽀뽀를 해 댈 정도였던 동생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맑디맑은 눈웃음으로 답한다. 자리에 앉아 지켜보던 아빠와 언니는 안절부절못한다. 직원은 점점 크게 소리 지른다. (한국인에게 중국어는 그냥 말해도 화난 것 같이 들린다). 언니가 “에잇!”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동생을 구출하기 위해 달려간다. 언니가 오자 동생은 의기양양하게 뭐라 뭐라 말한다. 여러번 의사소통에 실패한 이 상황은 언니의 등장으로 한 번에 해결되고, 셋은 맛난 컨더지(KFC) 버거 세트를 즐긴다.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이 가족의 문제 및 문제 해결 과정에서, 언니는 누구에게도 ‘고맙다.’ 소리를 들은 적은 없지만, 당연한 듯, 할 일을 한다.
동생은 매력 있고 능력 있으며 저돌적이며 자기가 관심 있는 일 외에는 아무렇게나 그냥 내버려둔다. 본인 생각에 조금이라도 매력적이거나 재미있을 법한 목표가 생겼을 땐 미친 듯 달려들고, 이내 흥미를 잃어버리곤 한다. 잃어버린 흥미 뒤엔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잔해물들이 주변을 잠식한다. 목욕하고 나면 허물처럼 널려 있는 많은 것들이 방치되어 있고, 그림을 그리고 나면 습작과 쓰레기들이 널브러진다.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 통엔 늘 잔해물이 방치된다. 언니는 따라다니며 치우다 잔소리하기를 반복하며 지쳐 이젠 포기 상태다. 언니는 늘 조용하고, 참는다, 문제가 생기면 늘 해결하듯 잘 참다가 어느 날 임계점을 넘어서면 폭발한다. 공부도 조용히 하고, 사고도 조용히 친다. 요즘의 사고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정도라고 할까?
아빠는 늘 말한다. 언니는 대기만성형, *미는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살 거라고. 물론 어찌 하찮은 사람 하나가 젊은 인생 둘의 80년 미래를 함부로 잣대질할 수 있겠냐만, 그냥 그럴 것 같다. 아빠가 20대쯤, 아빠의 외할머니는 아빠가 딱~ 직장인으로 살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엔 그저 직장인으로 산다는 말이 기분 나쁜 수준의 평가 절하였지만, 50줄이 되고 나서 보니, 요즘 세상엔 그것 역시 축복이자, 쉽지 않은 성취란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형제간의 협업에 거의 실패 했다. 형제 둘 중 누구의 잘못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없다는 것이 우리 형제의 현주소인 건 확실하다. 이를 보고 있는 아빠의 부모님은 마음이 어떨까? 결코 편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언젠간 부모는 자식보다 먼저 떠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너희가 협업이 가능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서로를 존중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에 한 번 정도는 상의할 수 있는 자매가 된다면? 아마도 대단한 성공을 이룰것으로 생각한다. 성공이 무엇인지 정의조하 하기 힘든 혼란스런 세상 속에서도, 남에게 배풀고, 세상에 기여하고, 존경까지 받을 수 있다면 정말 충분하다.
먼저 언니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존경해라. 그러면 너도 존중받고 존경받을 것이며, 점차 너의 무게와 가치를 알아본 너의 친구, 주변의 모든 사람이 너희 자매를 조금이나마 높게 평가할 거다. 그러면 많은 일들이 순조롭고 자연스레 풀리고, 행복과 부는 자연스레 너희들과 함께 할 거다. 아울러 동생은 무슨 일이든 집요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한 번만 더 마무리를 잘하면 언니에게 존경받을 거다. ^_^.
2025.8.13.
아빠 J드림.
